2011
by h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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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5권의 도서 소개문

1.

마지막 기회, 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 속에는 인생의 선배들이 남긴 짙은 후회와 아쉬움이 담겨 있다. ‘왜 그때 잡지 못 했나?’라는 탄식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번뜩이고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기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가버리는지.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조금만 늦어도 자신을 조롱하며 떠나가는 기회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기회를 잡으려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는 기회는 바라보지 못 한 채. 세상에 단 한 번만 주어진 기회. 우리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 그 기회란 바로 지금 ‘살아’있는 기회다. 살아있지 못 한다면 다른 어떤 기회도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기회는 곧 하나 뿐인 기회이자 우리들의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마지막 기회>는 부제에도 나타나 있듯이 지금 지구에 살아남은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보고서 이다. 이 책의 원제는 <Last Chance to See>이다. 이중적으로 멸종 위기 생물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그들이 살아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살아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동시에 소중하게 다가온다.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보고서라 하여 딱딱한 윤리적 사실들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는 책이라고 생각 한다면 오산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유머러스 하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마다가스카르손가락원숭이를 시작으로 코모도왕도마뱀, 흰코뿔소, 카카포, 양쯔강돌고래, 로드리게스과일먹이박쥐를 만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실버백 고릴라가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몇몇 다른 동물들(그리고 식물들 그리고 물론 사람들)이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위에 열거한 동물들이다. 동시에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마다가스카르, 코모도 섬, 아프리카, 뉴질랜드, 중국 그리고 모리셔스 섬에 가게 된다.

 

책의 주인공이 모두 동물들이기에 관찰자에 불과한 저자는 자연스레 인류라는 종에 대해 색다른 생각을 표출하기도 한다. 특유의 영국식 유머로 무장한 풍자적 해설 방식은 일단 읽는 이로 하여금 웃게 하고 잠시 후 뒤돌아 서서 생각하게 한다. 또한 계속 읽다 보면 놀라운 생태학적 지식과 인류문화사적 지식에 유식해지는 기분을 맛 볼 수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무식했는지 깨닫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자기애가 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신이 자연을 사랑하고 또 동물을 사랑한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가치가 만약 희소한 무엇이라면 지금 사라져가는 그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회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 생각해보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한 번뿐이기에 값지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삶을 공유해오면서 공동체를 생각할 때 그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 할 수 있는지는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2.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지미


궁금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랑이 언제 찾아오는지 아직 사랑이 찾아오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찾아올 때까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산다. 함께 살면서도 우리 서로는 너무나도 멀리 있다. 언제쯤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 채 어서 인연이 찾아와 주기를 기약 없는 삶은 계속 된다. 그러다 정말 사랑은 눈을 떠 보면 그대 옆에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사랑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불확실성, 즉 우연에 기대어 있다.

 

도시의 사랑은 무인도의 사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익명으로 무장된 인파 속에서 너와 내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무인도에 홀로 있다고 믿을 때 그대를 만나는 것만큼 신기할 수 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우리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걷는다.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남자는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가고 여자는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간다. 하지만 만남의 순간에 우리들은 그 방향에 의해 만나게 되리라. 언제나 모든 방향에는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 곳이 어디인지는 각자의 걸음이 멈추는 곳에 있다. 그 곳은 바로 그대를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책의 저자 지미 리아오의 간결한 그림에는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 순수함을 간직한 간결한 캐릭터들의 모습도 보기 좋다. 그리고 간결한 문구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좋다. 사실 중요한 순간을 결정 짓는 것은 무언가 많은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간명한 것이면 충분하다. 지미 리아오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과유불급. 심플함에는 여유가 깃들고 그러한 여유 속에 멋이 깃든다. 우리는 그리고 그러한 멋진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아니 순식간에. 누구도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준 적은 없는데. 우리는 어려서 모든 것을 배웠는데 어른이 되는 것만큼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일까? 순수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일까? 소망들을 잊어야 한다는 것일까? 사실 어른이 되어도 괜찮다고, 누군가 꿈을, 순수함을 그리고 소망들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필요하다. 마음이 텅 비어버리지 않게 채워줄 그림들이 그리고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3.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도롱뇽과의 전쟁은 아무래도 좋다. 인류는 그 전쟁에서 패배자가 될 것이다. 어디에서도 희망의 빛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것과 불행인 것은 이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때로는 기계문명이 때로는 외계인의 침공이 또 때로는 유인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에는 그 무엇도 아닌 도롱뇽들이다. 그러나 주체는 누구든 상관 없다. 멸망의 원인에는 언제나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지닌 존재라 여기는 인류는 이 지성에 고마움을 느끼지를 못 한다. 배움과 깨달음 뒤 편에서 이루어지는 개개인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행위는 한 사람의 규모에서는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집단, 사회, 국가의 규모에서 보면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발전을 이룩해냈다. 문명을 건설했으며 끝없이 진보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엄청난 소비와 파괴가 있었다. 무엇을 소비했고 무엇을 파괴 했는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임을 깨닫기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듯싶다.

 

최초로 발견된 도롱뇽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역시나 미개한 생물에 불과했다. 인간은 도롱뇽들을 길들여 노동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도롱뇽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갔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값싸고 다루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그들은 귀한, 아니 국가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도롱뇽 노동력의 특징은 아무래도 그들의 능한 수중작업에 있었다. 인류는 덕분에 더욱더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안락함에는 언제나 착취될 대상이 필요한 셈이다.

 

문제는 도롱뇽의 서식처와 함께 불거졌다. 도롱뇽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는 얕은 해안가가 필요했다. 필요한 도롱뇽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섬이나 해안가는 쉽사리 도롱뇽 번식처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번식력이 좋은 도롱뇽들은 금새 늘어나기 시작했고 얼마 뒤 그 수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의 씨앗은 도롱뇽들이 인간과 비슷하게 학습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조금씩 도롱뇽들은 배워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잡한 기술력도 능히 익히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인류는 그 동안 도롱뇽을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단순히 그 수가 너무 많았기에 죽였다. 이제 열쇠를 짊어진 것은 도롱뇽들이었다. 그들은 해상 권력을 거며 쥐고 있었기에 인류에게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조금씩 대륙은 폭파 되어 얕은 해안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 도롱뇽들의 서식처로 변모하기 시작 한 것이다. 도롱뇽들에게는 거리낄게 없었다. 이제 반대로 도롱뇽들에게 인류의 권리와 생존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류의 지성이란 계획을 짜는 것이며 계획이란 곧 생존을 위한 전략을 의미 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도롱뇽에게 가르친 것은 그들의 천적인 상어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방법 이었다. 그것은 도구를 사용하여 상어와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가르친 것인 각종 노동과 관련된 것이나 종합적으로 말해 효율성과 합리성이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교훈을 통해 효율성과 합리성의 결합된 결과 지향적 사상이 갖는 무서움을 배웠다. 오로지 목적 달성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에는 섬뜩함이 깃들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도롱뇽들이 배웠다. 번식력도 뛰어나고 육지 및 수중에서 생활이 가능하며 상처 재생력이 뛰어나 생존력이 강한 생물들이 인류의 지성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제 내가 도롱뇽과의 전쟁이 왜 아무래도 좋은지 설명해야 할 때가 된 듯싶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보헤미아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든 장본인이며 동시에 나에게 있어 체코 작가 3인방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기도 하다. 카프카, 밀란 쿤데라 그리고 카렐 차페크가 바로 그 3인이다.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와 달리 카렐 차페크의 문학에는 어려움이 없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그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 동시에 볼이 얼얼하도록 인류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그는 도롱뇽과의 전쟁을 통해서 결국 인류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에게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필연적 멸망을 다룬 예언서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차페크의 유머러스한 문장에 넋을 잃겠지만 책장을 덮으면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며 유익하다. 무엇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카렐 차페크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이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갖고 있다. 그는 체코의 초대 대통령인 토마슈 가리그 마사리크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 둘의 나이차이는 무려 마흔에 가깝지만 그들은 자주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카렐 차페크는 후에 그 대화들을 모아 마사리크와의 대화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 둘은 문화야말로 인류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통로라 믿었다. 그토록 인류를 사랑한 그였기에 끝까지 그는 포기 하지 않았다.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인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었고 그것이 그에게는 자유로움과 낙천성 이었다.

 

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안상현

 

하늘이 어두워지면 별이 뜬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본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가슴으로 추억을 불러내고 미래를 그려본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안상현 씨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우리 별자리』를 읽고 있노라면 내가 잊고 살았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별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내 작고 보잘것없는 초라한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별이 반짝이었기에 맺힌 인연들이다. 모두 개인적이어서 내게는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다. 두 손 가득 추억들을 모아 그대들과 공유해보고 싶다. 밤하늘의 별 빛을 공유하는 것처럼.

 

축복처럼 나의 유년시절은 시골에서 흘렀다. 형의 교통사고 소식은 무척이나 슬펐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고 덕분에 외가에서 머물게 된 1달 동안의 시간이 그저 좋아 지금도 아련해진다. 충북 제천의 공기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개천처럼 투명하게 맑았다. 밤이 되면 별이 쏟아져 내렸다. 난 사실 겁쟁이였다. 서울에서 학원을 늦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주홍 빛 가로등이 얼마나 무섭던지 꼭 언제라도 도깨비나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골에서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하늘과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아서 하늘은 계속 반짝반짝 거렸다. 하루 종일 개구락지랑 메뚜기를 잡으러 논으로 밭으로 뛰어놀다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은 봉투 가득 잡힌 개구리들의 노랫소리와 벌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했고 별들이 달님과 같이 길을 비춰주는 것 같아 좋았다. 그 즈음에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었고 생택쥐 페리의 『어린왕자』와 『견우와 직녀』 이야기 그리고 오누이가 해님 달님이 된 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그저 기쁘기만 했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여름 하늘에는 견우와 직녀가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사랑이 아직도 남아 우리네 ‘사랑’이라는 것을 지켜주는 것만 같아 고맙다.

 

대입 시험을 준비하면서 하루도 별을 보지 못 했다. 학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늦게 끝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그저 붉기만 했다. 대도시는 유행병처럼 열대야로 아팠고 이상하게 붉게 물든 밤하늘에는 달님도 별님도 찾아보지 못 했다. 그때부터인가 내게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앞만 보고 걸었고 타인을 향한 시선을 관리하느라 애처로웠다. 내게 별은 윤동주 시인의 별처럼 그리웠다. 그가 올려다본 가을 하늘의 별밤을 나는 점점 다가오는 시험 날짜 덕분에 올려다볼 수 없었다. 난 혼란스러웠고 다시 혼란스럽게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입생이 되어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술잔에 별을 깨뜨리러 비틀거릴 때 즈음 뒤로 고꾸라지거나 넘어질 때마다 하늘에는 별이 빛났다. 과거처럼 빛났다. 모든 것이 그대로 일거라고 이제 괜찮을 거라고 속삭여주는 별 빛이 야속했다. 내 손에는 입영 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겨울이 끝나 봄이 오면 나는 떠나야 했다.

 

군악병으로 2년간 용인에서 복무하면서 난 다시금 별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야간 근무를 위해 7초소를 향해 산을 터벅터벅 올라가면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때로는 너무 추워서 또 때로는 너무 졸려서 근무태만을 일종의 사치처럼 즐겼다. 에버랜드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야경에 그리움이 찰랑거렸다.(부대는 용인에 있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서울과 달리 별이 가득했다. 난 서울에서 별들이 다 도망쳐 여기와 있구나 싶었다. 나는 뱃사람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고 ‘저 별이 북극성이겠구나.’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 보면 별처럼 반짝이라고 내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갓 입대했을 때 선임병들은 나를 놀려먹으려고 내 눈을 가리며 그 깜깜한 것이 내 군생활 이라고 얘기했었다. 그 농()에는 희망이 없었지만 초소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들이 희망이었다. 간혹 운 좋은 날에는 별똥별이 떨어졌다. 나는 『우리 별자리』를 읽고 나서야 별똥별도 떨어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때는 그저 운에 맡겼었다. 그래서 때로는 적을 감시하는 것보다 별똥별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별똥별이 하늘에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 가면 총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재빨리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었다. ‘어머니 아버지 형 건강하게 해주세요, 친구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세계가 평화롭게 해주세요.’ 내게는 지극히 간절한 소망들이었다.

 

이토야마 아키코의 단편 『알리오 올리오』를 보면 삼촌과 조카는 별자리 이야기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중학생인 조카는 조만간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고 삼촌은 쓰레기 처리 공장에서 공기처럼 일한다. 조카는 미래가 혼란스럽고 삼촌은 평온한 물결과도 같다. 그 둘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별자리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언젠가 나도 늙게 되면 어린 조카들이나 손자들에게 해 주고픈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우리 별자리』는 그런 면에서 아주 소중한 기록이다. 4계절의 색이 뚜렷한 줄로만 알았지만 우리네 하늘의 별자리로도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동양의 놀라운 과학을 엿볼 수도 있다. 서양을 표준으로 공부해야만 하는 우리들의 과거는 그렇게나 애처로워진다. 실용성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세계의 패권인지 그것도 아니면 상업적인 이유에서인지 사라져가는 우리 별자리들, 언제나 밤하늘에 있으면서도 잊혀져 가는 이름들.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록 이름이란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소용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우리 허전한 입속에 맴도는 것이란 고작 이름뿐이다. 잊지 않고만 불러준다면 그대가 그대의 기억과 함께 영원한 것처럼.

 

가장 최근에 황석영 선생님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게 되었다. “어라 저놈 나왔네.” “저기……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날은 아쉽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문과 함께 지나가버릴 것이다. 지나가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기억이나마 조금 남아 있을 것이다. 영영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찌꺼기처럼 마음 구석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별, 별의 반짝임을 우리는 잊을 수 있을까? 고작 그것뿐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이 세상 소풍 마치는 날이 왔을 때 그런 몇몇 찌꺼기 같은 기억들뿐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거면 어차피 기왕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더 이상 아쉬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슴에 사무친 슬픔이여, 누가 그대를 달래주겠는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속에는 우리별이 있다. 잊히지 말아라, 나도 너도 한 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 반짝임을 또 다시 물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 아닐까 싶다.

 

5.

 

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우울한 이야기로 들릴지는 몰라도 마지막 순간이 그대를 찾아왔을 때 그대가 간직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재산도 명예도 여태까지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도 나는 가져갈 수 없으리라. 다만 내가 살아온 추억만이 남아 아름답게 빛나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언제의 추억이? 내가 가장 젊고 순수하던 그 시절,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빚은 추억이 아닐까 싶다.

 

프라하의 봄이 찾아오기 전,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는 아버지를 따라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3명의 친구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반드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주고 받은 저자는 냉전이 끝나고 성인이 되어서야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체코라는 타향에서 각자의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소녀들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저자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는 격동의 시절을 있는 힘껏 살아온 소녀들의 삶이 있었다.

 

남자에 대해 빠삭하며 거침없이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누구보다 고향을 그리워한 그리스 소녀 리차. 푸슈킨의 외모를 닮은 리차는 솔직했고 그녀의 당돌함에는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 성지식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모르는게 없는 그녀지만 학교 성적만큼은 어찌 손볼 도리가 없었다. 그랬던 그녀는 어떻게 의사가 되었을까? 또 아버지가 사게 될 자동차는 무조건 올리브 색이어야 하며 가보지도 못 한 그리스의 창공은 세계 어디보다 푸르고 높다며 그리워한 그녀가 어떻게 독일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과장된 거짓말을 숨쉬듯 해대던 아냐. 모두의 놀림감이 되곤 하지만 이야기꾼의 타고난 재주를 가진 아냐는 거짓말하는 버릇까지도 포함하여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다.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아냐는 혁명시대의 표현을 사용했으며 누구보다 자신의 조국인 루마니아를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랬던 그녀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살고 있다. 누구보다 러시아어에 능했던 아냐는 더 이상 러시아어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영어로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는 ‘하얀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에서 나타나듯이 그라드는 도시라는 뜻이고 베오가 하얀을 뜻한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온 소녀 야스나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막힘 없이 자신의 모국에 대해서 설명해 나간다. 어떻게 베오그라드가 ‘하얀도시’가 되었는지를. 저자는 그런 야스나의 차분한 매력에 푹 빠지고 그 둘은 금새 친구가 된다. 체육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인 야스나지만 그녀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민족 전쟁의 기운이 맴도는 유고슬라비아로 저자는 야스나를 찾아 나선다.

 

동유럽의 현대사는 실핏줄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언제나 상처가 나고 금새 피가 흐른다. 그런데 상처는 쉽게 아물어도 흉터는 남아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동유럽의 역사는 이게 전부다. 저자와 비슷한 기억을 나도 갖고 있다. 이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게 보스니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보스니아 무슬림인 그에게 민족적인 것은 언제나 민감했고 단순히 그것을 ‘동’유럽의 문제로 일반화 시키는 세간의 관점에 불같이 화를 냈었다. 그 친구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에 친구로 등록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없다.

 

그리워할 것이다. 끝끝내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을 테니 추억만이 남아 그마저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에는 결국 사람의 이치가 담겨 있다. 격동의 시기라 하였지만 시대와 상관 없이 세계를 바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눈과 귀와 입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바른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것처럼.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한 그런 종류의 일을 그녀는 해내고야 만다. 때는 1995 11월 추억의 노트를 들고, 프라하 시절 친구들을 찾아나선다.

by hec | 2012/02/14 01:59 | Gentle Madnes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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